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 2006. 3. 23. 18:49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빳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씁쓸한 밥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 詩作 메모 (1988. 11), 기형도




시인 기형도씨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했으며 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근무했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그는 이후 독창적이면서 강한 개성의 시들을 발포했으나 89년 3월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시집 '입 속의 검은 입'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고있다. 크로테스크 현실주의로 명명될 그의 시 세계는 우울한 유년 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며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시 공간속에 펼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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